바른 예배(1): “어디에서 예배해야 합니까?”
‘어디에서 예배드려야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우물에 물을 길으러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입니다(요한복음 4장). 이 여인에게는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다섯 남자는 모두 여인을 떠났고, 당시 같이 사는 남자는 법적인 남편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은밀한 사정을 낯선 유대 남자가 알 리가 없을 텐데, 예수님은 바로 이 문제를 드러내 이야기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몹시 당황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예언자’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요 4:19). 그러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로 인한 거북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어디에서 예배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꺼냅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여겨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예배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사마리아의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마침 유대인 남자를 만나게 된 여인은 바로 이 논쟁적인 문제를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라는 이 여인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거나,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요 4:21, 23절)고 대답하셨습니다.
여인의 질문은 예배의 장소에 대한 것인데, 예수님의 대답은 예배의 자세에 대한 것입니다. 여인의 질문이 예배의 형식에 대한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주목하시는 것은 예배의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은혜의 시대, 복음의 시대가 이미 예수님으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더 이상 예배를 특정한 장소에서 드림으로 하나님께 더 많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임재해 계신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모든 사람은 민족과 언어를 초월하여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 시대 예배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예배는 장소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예배드리건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면 그 예배는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가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교회 건물을 건축하거나, 기존 교회 건물을 빌려 예배하지 않고, 호텔이라는 세상 속 공간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거룩성을 훼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 한가운데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모습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 이방 백성들 한가운데서 예배드렸던 이스라엘 공동체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복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제 어디에서 예배드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예배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예배하는 이 지극히 세속적인 세상의 공간에서조차 하나님이 극진히 높임 받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 주간, 계속해서 바른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다음 주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축복인 ‘가정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