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한인 장로교회의 새 가족이 되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우리 교회는 1세대 이민자들과 유학생, 연수생 등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으로 훈련받고, 믿음 안에 성장하며, 복음으로 세상을 섬기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새롭게 우리 교회의 가족이 되신 여러분들과 우리 교회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경적 핵심 가치들을 함께 공부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3주간의 새가족 모임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의 주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말씀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교제와 전도를 통한 사람들과의 관계의 핵심에 관해 배우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은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복음”-“삶”-“공동체”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를 알고, 우리 교회를 통해 이러한 세 가지 측면에서 균형있게 성장하는 방법을 소개받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참 따뜻한 성도들이 모여있는 교회입니다. 활기찬 대학, 청년부의 에너지와 든든하게 교회를 이끌어가는 장년들의 저력, 그리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우리 어린 자녀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교회의 새가족이 되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만남’은 참 소중합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친구들과의 만남 등등. 이런 만남들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만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이 만남은 우리의 현재의 삶은 물론 영원한 삶을 바꾸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중요한 만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Listen!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 come into their house and eat with them, and they will eat with me.)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Some, however, did receive them and believed in him; so he gave them the right to become God’s children.)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어떤 분이시기에 그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기에 “복음” (Good News)이라고 합니다. 

이 복음을 듣기 위한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런데, 제가 수 많은 사람들과 이 복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을 열고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막는 걸림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탈권위주의입니다. (An attitude that does not admit any authority)

이것은 어떠한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선생님이나 어른, 심지어 부모의 권위 조차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세상 속에서 어떤 절대적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분을 생각한다는 것은 전근대적이며 시대에 뒤떨어진 관념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기독교인들이 그 믿음의 근거로 삼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로 생각합니다. 오래된 문서 정도로 인정해 줄 수는 있어도, 세익스피어의 희곡들도 진위 여부를 가리지 못하는 판국에 어떻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충분히 타당한 의심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지금 나누려는 이야기에 아예 귀를 막아버리고 이 자리를 떠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것에 동등한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듣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탈권위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의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이 세 번의 만남으로 초대합니다.

두번째는 세속주의라는 걸림돌입니다. (Secularism)

세속주의는 모든 생각, 가치관, 판단 기준 등이 종교나 종교적 믿음으로 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An opinion that any thoughts, values, standards should be separated form any religion or religious faith). 모든 사람은 종교의 자유(freedom of choosing one’s faith)를 가져야 하고, 국가는 종교를 개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 세속주의의 주장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십니까? 그런데, 선뜻 대답하시기 전에 “종교”(religion)란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어떤 “종교”를 우리의 의지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무엇인가라고 생각한다면 아마 세속주의의 이런 주장은 타당할 것입니다. 한 손에는 쿠란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모슬렘으로 개종할 것을 강요했던 이슬람교나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종교의 이름으로 명분없는 전쟁을 했던 기독교의 모습은 부인할 수 없는 잘못입니다.

그러나 “종교”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각각 가지고 있는 생각, 가치관, 판단 기준의 근거라고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However, how about if we say, “religion” is not something we may choose, but the foundation that everyone shares their thoughts, values, and standards)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도 아무 생각없이, 특정한 가치관에 근거하지 않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No one can live without thinking, without any moral value)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단순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특정한 종교를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개개인과 그 공동체와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엔진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속주의의 모든 종교로 부터의 분리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세속주의가 주장하는 종교로 부터의 분리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참된 의미를 갖는 진정한 “종교”를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개인주의라는 걸림돌입니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존엄, 가치, 권리 등을 중시하는 사상으로 국가나 집단 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사상입니다. 이런 개인주의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습니다. 사회나 국가적인 공통의 선을 추구하는 것과 개인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이 생길 때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며 사회나 국가의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희생과 복종이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복종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처음부터 희생과 복종 위에 건설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희생과 복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간을 위한 희생과 사랑 위에 건설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개인주의적 사고 방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대안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우리에게 세 가지 회복을 말합니다.

1) 복음 (탈권위주의로 부터의 회복)

2) 거룩한 삶 (세속주의로 부터의 회복)

3) 하나님 나라 (개인주의로 부터의 회복)

이 세가지를 앞으로 차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