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ript: [[사도행전 11]]:19-30

🔦 Highlight (관찰)

사도행전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 Explain (해석)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성도들은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유대 여러 지역과 사마리아로 흩어졌다. 그중에 일부는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에 까지 이르렀는데, 이 지역에서도 유대인 성도들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들은 고넬료의 회심을 보기 전의 베드로와 제자들과 같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사람들이 헬라인에게도 예수를 전했다. 이들은 복음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이방인도 예수의 이름을 믿고 구원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성령의 은혜 가운데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이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유대교적 문화와 사고방식을 뛰어 넘어 성령께 순종하여 복음을 이방인에게도 전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도행전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주의 손이 함께 하셨다’는 말씀은 성령께서 권능으로 역사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할 때 능력이 나타났다. 복음을 듣지 못했던 때에는 일어나지 않았던 구원의 역사가 주 예수의 이름을 듣자 일어났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역시 주 예수의 이름 외에는 다른 이름으로 구원얻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사도행전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안디옥에서 처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구브로(Cyprus)와 구레네(Cyrene) 출신의 유대인 성도들이었다. 이들은 말하자면 타문화권 속에 살아가던 유대인 이민자들이었다. 예루살렘 지역의 유대인들에 비해서 이들은 다중 문화권에서 살아가던 경험으로 인해 보다 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일 문화권에서 유대인 중심적 문화 속에 살아가던 이들이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일을 이들은 보다 열린 사고로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고, 성령께서는 이들의 열린 사고 방식을 사용하심으로 이방인 복음 전파의 문을 활짝 여실 수 있었다.

안디옥에서 복음 증거의 열매는 폭발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사도행전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는 이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낸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이들은 유대교적 배경이 없는 이방인들이기에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적임자가 바로 사울이었다. 바나바는 회심 후 다소에 머물러 복음을 전하고 있던 사울을 안디옥으로 불러와 일년간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동역한다. 그 결과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작은 그리스도’라는 의미다. 제자들의 말과 행함이 그들이 증거하는 ‘그리스도’와 꼭 닮았다는 것이다.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작은 그리스도’ 즉 ‘작은 예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제자는 바로 ‘작은 예수’와 같은 사람들이다.

💡 Apply (느낌)

사도행전 10장과 11장은 유대교적 사고 방식의 틀을 깨고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이야기가 계속된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여 안디옥에서 이방인 교회가 처음으로 탄생하는 장면은 대단히 감격적이다. 이들의 다중 문화의 경험은 미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민자들과 비슷하다. 이민자들과 그 자녀들이 말씀을 배우고 복음으로 세워질 때, 계속해서 세속화 되어 가는 이 사회 가운데 보다 효과적으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구원얻게 된 이방인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이었다. 이들이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일년간 열심으로 배우게 되자, 이들은 ‘작은 예수’, 즉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변화를 가져온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에서 ‘큰 무리’에게 가르쳤다. 밤낮으로 복음의 진리를 열심으로 가르쳤을 때 안디옥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지고 부흥했다. 교회가 주님의 뜻 가운데 교회다워지는 것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가르쳐질 때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면서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주님의 일을 위한 열심이 식어질까 염려되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목사의 일방적 소통이어서는 안 되기에, 각 가정을 심방하며 자녀들로 부터 부모들까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있는지, 예배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가지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있는지, 경건한 가정을 이루어가고 있는지, 성령으로 충만한지를 확인하고 말씀으로 권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을 통해 성도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주님께 그 시선을 고정할 수 있도록 섬길 때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이 바로 안디옥 교회를 바나바와 사울이 일년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섬겼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 Response (적용)

하나님의 말씀을 최선을 다해 준비해 가르치는 일이 목사인 나의 사명이다. 설교와 훈련을 통해 성도들을 양육하고 제자로 길러내는 일이 주님의 심부름꾼이 목사의 일이다. 그리고 이 일은 각 성도들이 말씀 안에 거하고 있는지, 성장하고 있는지, 혹시 하나님과 교회로 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멀어져 있지는 않은지 세심하게 살피는 일과 함께 되어져야 한다. 이것을 위해 성도들을 가정별로 심방하며 그들의 영적 상태를 돌아보고 있다. 설교, 훈련, 심방의 사역들이 바로 본질적인 목사의 사역인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우리 성도들이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든든히 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박해 가운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든 교회는 성장했다. 팬데믹의 어려움은 우리에게 장애물이 아니라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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