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ript: [[사도행전 7]]:1-16

🔦 Highlight (관찰)
사도행전7: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 Explain (해석)
스데반 논쟁의 세 가지 요점
스데반은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였기에, 리버디노 회당에 속한 사람들로서 스데반과 논쟁한 사람들은 그를 당해낼 수 없었다(6:9-10). 이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을 모함했기에, 대제사장은 스데반에게 “이것이 사실이냐?”(7:1)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스데반은 유대 역사를 광범위하게 개관하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어떻게 돌보시고 이끌어 오셨는가 하는 것을 설명한다.

스데반이 말하는 요점은 세 가지다. (1) 땅, (2) 율법, (3) 성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시고, 하나님 백성의 삶의 방식인 율법을 주셨으며, 그 백성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성전을 허락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약속의 땅에 거하고, 율법을 지키며, 성전에서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곧 자신들이 바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오해했다. 이스라엘은 자실들이 누리고 있는 이 세 가지 축복이 곧 그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순종하고, 예배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스데반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7장 53절까지의 긴 논증에서 밝히고 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순종하고, 예배하여 이 모든 축복들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며 잘못된 자신감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만약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바르게 믿고, 순종하며, 예배했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을리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천사들이 전하여 준 율법을 받기만 하고 지키지는 않았다”(53절).

복을 받는 이유
스데반은 가장 먼저 그들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브라함 이야기의 핵심은 “땅”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갈데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다. 아직 보지도 못한 땅을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받았다. 그 뿐 아니라 아브라함은 단 한명의 자식도 아직 없는 상황 속에서 그 땅을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사도행전7:5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이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그가 그 땅에 살았기 때문에, 혹은 그가 많은 후손을 이미 얻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믿음을 따라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신 것이다.

스데반은 계속해서 요셉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요셉도 타국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복을 주셨다. 요셉 역시 가나안 땅에 있었기 때문에, 그 땅을 소유했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타국에 팔려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그를 순종하였기에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시고 그에게 축복하셨던 것이다.

💡 Apply (느낌)
이스라엘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소유하고 있고, 그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믿었다. 또 율법과 성전을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잘못된 믿음이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과 요셉의 예를 들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한 자락도 받지 못했으며, 아직 단 한 명의 자식도 없는 상황 속에 자신과 그 후손이 그 땅에 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던 아브라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어서 가나안이 아닌 이집트에서 하나님께 대해 신실함으로 이스라엘의 구원이 된 요셉을 예로 들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받아 누리고 있는 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받을만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의 약속으로 주시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오늘 내 삶 속에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는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혹시라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영적인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이다.

⚡️ Response (적용)
“고린도전서4: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오늘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하게 하심을 감사한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의 나됨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축복을 권리로 착각하지 말자. 축복은 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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