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cript: [[미가 1]]:1-7
🔦 Highlight (관찰)
미가1: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 Explain (해석)
선지자 미가
미가서는 ‘작은 이사야서’라고 불릴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선지서이다. 미가가 사역했던 시기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이 사역했던 시기로 대략 725-690년일 것으로 본다. 그가 사역했던 시기는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이 경제적으로 부흥을 누리고 있었을 때였다. 안정적인 정치와 무역과 상업의 발달은 두 왕국 모두에 큰 부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제적 풍요는 이기주의, 종교를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려는 욕망, 가치관 파괴 등 많은 문제들을 낳았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게 만들고 말았다.
하나님은 그들 중에 있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고 하심으로써(신명기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주신 부를 가진 자들만 독점할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경제적 풍요를 누리고 있던 당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에는 이와 같은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명하신 약자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총체적으로 무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가는 모레셋 사람(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35km 정도 떨어진 도시)이라는 것 외에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이사야 선지자가 귀족 출신으로 위에서 아래로의 개혁을 외쳤다면, 미가는 평민으로 아래에서 위로의 개혁을 외쳤다고 볼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성전과 왕궁에서 사역했다면, 미가는 시장과 도심에서 사역했다. 미가는 공의와 정의의 실현에 온 힘을 쏟은 선지자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치와 사회적 삶의 기준과 원칙이 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며 죄라는 것을 지적한다.
미가의 이름의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은가?’라는 질문이다. 이 답은 미가의 사역을 통해 증명된다. ‘여호와와 같은 분은 없다’ 라는 것이 미가가 그의 이름을 통해 외치고 있는 메시지다. 미가는 ‘여호와의 말씀’을 이제부터 선포한다(미가1:1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자이다. 그러므로 유다와 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자세히 듣고, 깨닫고 회개하며 순종해야 한다(미가1:2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심판하러 오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법정으로 불러 내신다. 그곳에서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증언하신다. 하나님이 서신 법정은 ‘땅의 높은 곳’으로 그 아래 산과 같이 높이 솟은 것들이 불에 초가 녹듯 물처럼 쏟아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임하시면 이처럼 온 세상이 그 발 아래 두려워 떤다. 이와 같은 하나님을 잊고, 그 말씀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분노는 얼마나 두려울 것인가!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는 무엇인가? 미가는 야곱이 사마리아를 산당으로, 유다가 예루살렘을 산당으로 바꾸었다고 지적한다(미가1:5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각각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수도로 정치, 경제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야곱와 유다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우상을 섬기는 ‘산당’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향한 제사가 그친 것은 아니었으나, 하나님을 향한 제사와 우상을 향한 제사가 함께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우상을 섬긴다면 하나님은 이미 버린 것이다. 종교적 형식을 지키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려 한다면 더 이상 그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지 않는다. 종교적 혼합주의야말로 하나님 앞에 큰 죄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죄의 결과 두 왕국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미가1:6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유다와 이스라엘이 섬겼던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깨뜨려질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 앞에 힘없이 무너질 헛된 것들 앞에 무릎 꿇었던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음행의 댓가로 얻었던 경제적 풍요(‘몸을 팔아 재물을 모았은즉’, 7절)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 Apply (느낌)
다시 한번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게 된다. 미가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심판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법정에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신다. 하나님께서 단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백성의 모든 죄악을 낯낯이 드러내실 것이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려는 모든 시도는 죄악이다. 우상 앞에 무릎 꿇어 얻는 재물은 ‘몸을 팔아 얻는’ 재물이라고 하셨다. 우상 숭배는 종교적 음행이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삶을 다시 한번 이 말씀에 비추어 돌아본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경제적 풍요를 누릴 때 그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축복임을 잊었다. 부유해질 때 그들의 눈이 가리워졌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우상과 그것들을 위한 산당을 꾸미기 위해 쏟아 부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으로 고소하신다.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이다. 재능도, 시간도, 돈도, 일도, 사람들도 모두 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나는 그 모든 받은 것들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으로 나의 우상을 만들고, 산당을 꾸미고 있는가?
⚡️ Response (적용)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공적 예배와 매일 내 삶 속에 드리는 개인적인 예배가 있다. 함께 모여 한 자리에서 예배 드리기가 어려워진 팬데믹 상황이지만, 어떤 형식이건(대면, 온라인) 공적 예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함께 예배하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적인 예배에도 더욱 힘써야 한다. 매일의 골방은 하나님을 만나는 나의 예배의 자리이다. 주일의 예배는 매일의 골방의 예배로 이어져야 한다. 골방에서 예배에 승리하는 자가 삶의 예배에서 승리한다. 개인적 예배와 가정 예배를 회복하도록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