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뭉치 하나의 감사

BJ 밀러(BJ Miller)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완화치료 전문의이며 호스피스 사역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는 존엄하고 품위 있게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깊이 통찰하는 학자로 유명합니다. 2015년 ‘삶의 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이란 주제로 테드TED에서 한 강연은 그해 가장 높은 조회 수 15위 안에 들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하셔서 꼭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대학생 시절, 밀러는 감전사고로 두 다리와 한 팔을 절단한 다음 화상 병동에서 깨어났습니다.

“화상 병동은 매우 특이한 곳이다. 소름끼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 환자들은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화상 병동에서는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의사들도 많다. 화상 병동에 있으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차단된다. 낮도 밤도 없다. 병실에는 창문도 없었다. 침대 옆에 사람들이 있어도 다들 완전 무장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 무엇보다 고통이 너무 심하다 보니 어딘가에 주의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나는 그곳에서 겨울을 맞이했다. 어느 날 담당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와 내 남은 한 손에 뭔가를 올려놓았다. 작은 눈뭉치였다. 화상 때문에 딱딱하고 보기 흉한 염증으로 가득한 내 피부와는 너무나 다른, 너무나 생생한 촉감에 나는 깜짝 놀랐고, 눈이 천천히 녹아 물이 되는 모습은 기적이었다. 눈뭉치라니… 아, 이 작고 사소한 것이 내 온몸의 죽은 감각들을 이렇게 뚜렷하게 깨워놓다니! 눈물이 났다. ‘이게 바로 살아 있는 것이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이 나를 오랫동안 흐느끼게 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하얀 눈이 보이지 않는 물로 변하듯, 삶도 매 순간 변한다는 것을, 그래서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나는 병실 문을 나설 수 있었다. 만물은 그저 일시적인 순간에 존재할 뿐이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아주 이상한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었고, 그래서 너무도 낯선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하나의 오랜 세상을 빠져나와 새로운 세상의 문을 살짝 연 느낌이었다. 몹시 강렬한 경험이었다.”

밀러는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의 한 가운데서 작은 눈뭉치 하나를 통해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짧은 시간이 그의 생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깨달은 생의 의미는 그에게 계속해서 살아갈 의미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제 부모님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호스피스 사역을 하셨습니다. 호스피스는 말기 암 환자 등 죽음을 앞 둔 환자들을 찾아가 환자의 영적, 감정적 상태를 돌보아 주는 돌봄 사역(care ministry)입니다. 선교사로 사역하던 시절 잠시 한국에 방문했을 때, 아버지께서 돌보시던 환자를 함께 찾아 갔던 적이 있습니다. 혼자 외롭게 투병하던 환자를 찾아가 그의 손에 나무 십자가를 쥐어 주신 후, 손에 손을 포개어 잡고 간절히 기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든 이들을 믿음 안에서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버지를 통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원치 않는 병에 걸려 투병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죽음의 실체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감사하고, 그리스도 예수 없이는 준비할 수 없는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 호스피스 사역입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때 깨닫게 됩니다. 다가오는 육체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말기 환자들은 그의 생명의 불이 곧 꺼지게 될 것을 알기에 더욱 간절히 그 삶의 참된 의미를 찾기 원하게 됩니다. 제 아버지를 통해 만나게 된 그 환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아는 은혜를 누리며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아마도 임박한 죽음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누구나 죽음을 향해 매일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았다면, 온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다가 올 영원한 세상에서도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감사는 아무리 넘쳐 흘러도 부족할 것입니다.

저에게는 올해 감사한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교회가 개척되고, 생각만해도 사랑스러운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하게 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감사 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에게 허락하신 감사 거리들을 돌아보는 이번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주일(11/24)은 “추수감사 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감사가 충만한 삶 되기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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