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잊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면

지난 7주 동안 우리는 매 주일 룻기(The Book of Ruth) 말씀을 함께 읽고 묵상했습니다. 룻기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헤세드)가 엘리멜렉과 나오미, 룻과 오르바, 보아스와 아무개(Mr. So-and-So)의 “선택”, 여러 사람들 간의 “만남”, 나오미와 룻의 “회복”이라는 주제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룻기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행동의 주체가 되어 일하시는 것으로 기록된 것은 단 두 절에 불과합니다.

“모압 지방에서 사는 동안에, 나오미는 주님께서 백성을 돌보셔서 고향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두 며느리와 함께 모압 지방을 떠날 채비를 차렸다.”(룻 1:6)

“주님께서 그 여인을 보살피시니,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룻 4:13b)

룻기 전체를 통해 우리는 우연과 같은 많은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내린 결론은 이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른 섭리였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이 직접 주어로 묘사된 위의 두 구절 외에 모든 구절구절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그 섭리 가운데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 기간에 우리는 매일 민수기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민수기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집트에서 구원받고, 광야에서 돌보심을 받은 이스라엘은 큰 기대 가운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가나안에 입성해 가나안 주민들을 정복하고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사사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사사 시대가 바로 룻기의 배경입니다. 사사 시대의 특징은 사사기 제일 마지막 구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삿 21:25)

왜 하나님의 백성이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를 통해 직접 들었음에도 여러 번 반역하고,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들이 일단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자, 그들은 안타깝게도 그들을 구원 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을 점점 잊어가게 되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기근을 피해 베들레헴을 떠나 좀 더 푸르러 보이는 모압으로 이주할 때에도,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결혼시킬 때에도,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로 할 때에도, 그들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지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행했다는 사사기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이처럼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그 백성을 버리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룻기에 단 두 번 밖에 하나님이 표면에 나타나시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그 백성을 돌보시기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그들에게 계속해서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나오미와 룻의 회복을 통해 보지 않았습니까.

이제 룻기를 마치고 이번 주부터는 에스더서(The Book of Esther)를 주일 본문으로 강해하게 됩니다. 룻기와 에스더서는 특이하게도 여성의 이름이 제목으로 등장하는 성경입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룻기에는 그래도 두 번 하나님이 주어로 기록되지만, 에스더서에는 이름이나 칭호 등으로 하나님을 아예 언급하지 않습니다. 에스더서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명백하게 언급하지 않는 유일한 책입니다.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 같고, 하나님은 이제 더는 그들을 돌보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서 그 얼굴을 숨기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에스더서의 배경입니다. 하나님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는 상황 속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 하나님을 잊은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잊지 않으시고 여전히 사랑하시고 돌보시는지 그 손길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에스더서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우리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세상이 아닐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는 세상 아닐까요?

이런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룻기에 이어 에스더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단 한 순간의 쉼도 없이 우리를 돌보시며, 모든 상황 속에 일하시며, 나와 세상의 주인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강력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고 계신다는 확신이 없으십니까? 나를 압도하는 세상 속에 두렵고 외로우십니까? 에스더서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 된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을 다시 한번 굳세게 잡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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