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받고 보냄받은 피츠버그 한인 장로교회는 “더 작은 교회들(순모임)을 개척하는 작은 개척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대한 어떤 정의보다 저는 이 정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우리 교회의 비전과 가치가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하워드 스나이더는 ‘기존의 건물 중심의 제도화된 교회 구조와 목사 중심의 목회 구조’가 교회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소멸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005년 한미준과 한국 갤럽의 공동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 교회에서 주일 예배 한 번만 드리는 사람이 55.1%로 절반이 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본 사람은 삼분의 일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전혀 읽지 않는 교인도 53%나 되었고, 하루에 10분 이상 성경을 읽는 성도도 불과 20%에 불과했습니다.
성도들의 이와 같은 모습은 초대교회 제자들의 모습과 너무나 다릅니다. 초대교회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배우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르며 배워야 하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지역의 이방인 불신자들로 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영광스런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마치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신 것처럼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자의 삶은 일주일에 단 한번 드리는 예배와 설교 중심의 신앙 생활로는 불가능합니다. 제자도는 거듭난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말씀을 통해 삶이 변화되고, 성령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지속적으로 변화하고,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절대로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서로 마음을 써서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는 모이기를 그만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히 10:24-25). 히브리서 기자가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더욱 힘써 모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로 마음을 다해 사랑과 선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선한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제자의 삶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함께 힘써 모여 서로를 격려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교회 안에 왜 성령의 능력을 찾아보기 힘든지, 예수님 닮은 제자가 되는 일에 왜 우리가 실패하고 있는지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가 건물 중심, 목회자 중심, 프로그램 중심으로 제도화된지 오래입니다. 일주일에 단 몇 시간 사용하는 건물을 짓고, 유지하는데 너무 많은 돈과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건물이 목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사람들 좀 모이면 건물 짓고, 교회 건물이 주보의 첫 표지가 됩니다. 건물만 잘 지어놓으면 그럴듯한 교회처럼 보이고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성도들을 즐겁게 하느라 바쁩니다. 프로그램은 넘쳐나는데 정작 은혜는 없습니다. 성도들은 정신없이 바쁜데 무엇때문에 바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성도들이 성장하고, 성숙하지 못하니 모든 목양의 사역을 목회자들이 독점합니다. 예배, 목양, 가르침, 행정 등 모든 것이 목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교회가 됩니다. 목사 한 사람이 뛰고, 나머지 사람들은 팔짱 끼고 구경하는 구조가 되는 것이지요. 모두가 필드에서 뛰는 선수가 되어야 하는데, 박수치고 야유하는 구경꾼이 되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건물 중심, 목회자 중심, 프로그램 중심의 교회 모델에 너무나 오랫동안 안주해 왔습니다. 잘 지은 멋진 건물이 있으면, 설교 잘 하는 목사 한 사람 있으면, 일년 열 두달 돌아가는 괜찮은 프로그램들이 있으면 좋은 교회라는 착각을 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런 교회들이 정말 좋은 교회입니까?
더 이상 말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지고, 거룩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며, 영혼 구원의 열정이 매말라 버린 교회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신약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는 길은, 함께 힘써 모이고 말씀으로 격려하는 작은 공동체의 회복에 있습니다. 그 모임이 바로 우리가 시작할 순모임입니다. 함께 꿈꾸며 기도합시다.
– 순모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도 계속 이어 가겠습니다.